영화 서울의 봄 2023년 11월 22일 개봉 후 12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며 흥행하고 있습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압도적인 평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영원할 줄 아는 사악한 바보들에게"
박평식 ★ ★ ★ ☆
"'어떻게 성공했지?'라는 궁금증과 하나회를 향한 분노가 왔다 갔다"
임수연 ★ ★ ★ ☆
"야만과 무능의 그 겨울밤에 대한 분노가 시종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펄펄 끓는다."
이동진 ★ ★ ★ ☆
여러 평론가들의 평점입니다. 상당히 좋은 평가들이 지배적인데, 어떤 평론이 가장 와닿으시나요? 저는 임수연 평론가의 '어떻게 성공했지?'라는 부분과 이동진 평론가의 '펄펄 끓는다.'라는 말이 가장 와닿습니다.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이지만 영화 보는 내내 고구마를 먹은듯 답답하고 화가 나던 장면이 어찌나 많은지, 그리고 그런 것들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표현해낸 영화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 인물, 서울의 봄 이태신 장군 인물이 실제인물인가? 이태신 실제인물 누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게 표현되어 그나마 위로가 됐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입니다."
이태신 실제인물 장태완 장군의 '불행했던' 일생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목차
이태신 실제인물
이태신 실제인물 장태완 장군이라는 점은 아마 많이들 아실겁니다. 장태완 장군 고향은 경북 칠곡군(현재 구미로 편입된 위치)으로 남겨진 녹음 목소리에서는 사투리가 뚜렷한 인물입니다.
서울의 봄 영화에서는 고문 당하며 영화가 막을 내리지만 이후 풀려나 공기업 사장, 국회의원 등을 지내기도 합니다. 관련해서는 여러 비판도 있었지만,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풍비박살 난 집안과 이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와신상담'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태완 프로필
생년월일 1931년 9월 13일
고향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신동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65길 78-41)
사망 2010년 7월 26일 (향년 78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본관 인동 장씨 상장군계
호 산남(山南)
재임기간 제7대 수도경비사령관 1979년 11월 19일 ~ 1979년 12월 12일
장태완 가족 아내 이병호 아들 장성호 딸 장현리
이태완 실제인물 장태완 장군은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육군종합학교에 지원해 임관한 군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육사 출신이 주류였기에 육군종합학교 출신 인물들은 험지로 보내져 살아남은 몇 안되는 장교라고 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갑종장교 출신이라며 비주류 취급을 받던 모습이 기억나실겁니다. 갑종장교는 대한민국 육군 초창기 장교 양성 제도 중 하나로 육군종합학교 제도가 대표적입니다. 1950년 ~ 1969년에 운영했던 제도입니다.
서울의 봄 이태신
서울의 봄 이태신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영화에서 30사단으로 출동하는 이태신 장군이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면서 지나는 모습이 생각나실겁니다.
서울의 봄 이태신 이름은 바로 이순신 장군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태신 실제인물 장태완 장군의 모습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군인다운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1967년 착공해 1968년 완성되었습니다. 서울의 봄 배경이 1979년 12.12. 군사반란이니 시기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장면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 논란
1968년부터 광화문 앞, 세종로를 지켜온 대표적 상징 조형물인 이순신 장군 동상은 고증 논란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갑옷이 왜 중국식이냐부터 여러 논란이 있는데 관련 논란을 짚어보겠습니다.
1. 이순신 장군 칼
이순신 장군이 왜 칼을 오른손에 쥐고 있느냐, 그가 왼손잡이냐부터 논란이 있습니다. 그리고 왜 일본도를 들고 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장검은 상당히 큰 곡률을 가지고 있는 검을 사용했으며 현재 동상이 쥐고 있는 칼은 일본도의 변형으로 보인다는 논란이 상당합니다.
2. 이순신 장군 갑옷
이순신 장군 갑옷이 중국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식 갑옷은 두루마기처럼 입는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분명 중국식 갑옷으로 잘못 만들어져 고증 오류가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장군이 지휘하는 북이 누워있는 형태, 얼굴 형태가 표준영정과 다르다는 지적 등 많은 논란이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입니다. 고증 자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때 이순신 장군 동상 철거가 예정되어 있다며 논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인물이 지닌 상징성을 고려해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여러 논란처럼 이순신 장군 동상도 고단한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참고해 만들어진 서울의 봄 이태신 실제인물 장태완 일생은 참으로 고단했습니다.
장태완 장군
1931년생인 장태완 장군은 12.12. 군사반란 며칠 전 11월 16일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됩니다. 영화에서도 보이듯 이태신 실제인물 '장태완 장군'은 군인 그자체였습니다.
26사단장으로 취임해 근무하던 시절, 당시 군인 식사는 짬밥 그자체였다고 합니다. 고기는 우려내서 없어진건지 흔적없는 고깃국에 푸석푸석한 밥이 일상이던 시절 장태완 사단장이 취임하자 식단 자체가 개선되었다는 회고록이 있기도 합니다.
회고록에 따르면 체력 검사에서 우수 병사로 뽑히면 바로 포상 휴가를 주고, 나쁜 성적을 낸 부대는 고된 기합을 받기도 하며 채찍과 당근을 함께 주는 사단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인물이었기에 장태완 장군은 하나회와 척을 지게 된 것일까요?
장태완 장군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보이듯 이태신 실제인물 장태완 장군은 군인 그자체였다고 합니다. 하나회 핵심 인물 중 한 명을 하극상으로 영창 보내며 전역시키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상구 중령이 진행하던 수경사 방공 진지 공사 현장이 진지의 은폐, 엄폐를 위한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 자리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자란 놈이 어떻게 대한민국 장교가 됐냐'며, 그러자 김상구는 '4년제 육사에서 배우고 당신보다 군사학을 더 공부하고 임관했다'며 하극상을 일으키자 사령부에 해당 사실을 낱낱이 고했다고 합니다.
하나회 인물들이 관련 사실을 유야무야 넘어가려 하자 장태완 장군(당시 준장)은 군기문란이라며 자신을 내보내든, 김상구를 구속시키든 양자택일 하시라며 강경하게 반응했습니다.
결국, 김상구는 영창에 갔다가 전역하게 됩니다. 영화에서 장태완에 대한 하나회 인물들이 반감을 가지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후 이태신 실제인물 장태완 소장 진급하고 6년 뒤 영화 서울의 봄 내용이 이어지게 됩니다.
'불행했던' 하지만 당당했던 장태완 장군 가족
서울의 봄 영화 끝무렵에 이태신, 정상호, 김준엽은 혹독한 고문을 받습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전구광(황정민)이 군사반란을 성공했기, 당시 혁명이 되었기에 반란을 진압하려 했던 인물들의 말로는 처참했습니다. 오히려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은 조금 표현을 자제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서울의 봄 이태신 실제인물 가족 장태완 아버지
장태완 아버지는 아들이 쫓겨났다는 소식에 "나라에 모반이 있을 때 충신은 몯밤자들에 의해 살아남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막걸리로 끼니를 대신하며 분개와 통탄하며 지내다 1980년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장태완 장군은 자신의 불효를 탓하며 "아버님, 천하의 불효막심한 이놈을 용서하지 마시라."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이태신 실제인물 가족 장태완 아들
영화에서도 장태완 보고 "공부 잘하는 아드님, 봄 되면 대학식 입학식 때 꽃다발 들고 가셔야죠."라는 대사가 있기도 합니다. 실제 장태완 아들은 공부를 아주 잘했다고 합니다.
아들 장성호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 81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이태완 실제인물 장태완 아들 장성호는 갑작스레 실종됩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칠곡군 할아버지 묘지 근처 산기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故 장성호의 묘.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1학년생. 모범 우등생. 여기 채 못다 핀 한 송이 꽃이 최고의 선을 위해 최대의 인고로 향학하다 수석의 영예를 안고 1982년 4월의 짧은 인생을 마치고 고이 잠들다.
아들의 묘비에 장태완이 직접 쓴 내용입니다.
이후 산천을 유랑하기도, 스스로를 "12.12. 반란을 막지 못한 국민의 죄인이자 가족 3대를 망친 가문의 죄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서울의 봄 이태신 실제인물 인생은 끝이 이리도 '불행했던'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나라의 충신이라며 오히려 당당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 중 딸 장현리, 사위, 외손녀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2008년 폐암 수술을 받고, 2010년 오랜 숙환으로 명을 달리합니다. 그렇게 장태완이 떠난 후 부인은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태신 실제인물 장태완 장군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고구마 먹은듯 답답하고 화났던 영화 서울의 봄에서 그나마 갈증을 풀어주는 멋진 인물이었습니다. 지금도 이태신 실제인물 장태완 장군 같은 군인분들이 많겠죠?
서울의 봄 이태신 실존인물 장태완 장군이 당시 반란을 막아냈다면, 그를 조금이라도 도울 인물이 많았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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